에콰도르 경찰, 멕시코 대사관 급습… 비리혐의 에콰도르 전 부통령 체포
멕시코, 외교관계 단절 선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일제히 규탄 성명
AMLO 대통령, “멕시코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행위”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 “에콰도르는 주권국가로 어떤 범죄자들도 면책있을 수 없어”
비상사태로 갱단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에콰도르 정부가 수도 키토(Quito)에 주재한 멕시코 대사관을 급습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멕시코 정부는 이미 외교단절을 선언한 상태이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에콰도르 정부의 이 같은 행위를 규탄했다.
지난 5일 에콰도르 경찰은 호르헤 글라스(Jorge Glas) 전 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멕시코 대사관에 진입했다.
미주기구(OAS)는 지난 6일 성명에서 에콰도르의 이같은 행위는 1961년 비엔나 협약을 위반한 조치며, 외교 공관의 불가침성은 협약을 맺은 국가들간에 당연시하는 규범이라고 강조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멕시코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국제법과 멕시코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비난했다.
호르헤 글라스 전 부통령은 멕시코 대사관에서 경찰들에게 체포된 후 키토의 우디닷 데 플라그란시아(Unidad de Flagrancia)에서 이른 아침을 보냈고 지난 6일 비행기로 과야킬 (Guayaquil)시에 있는 라 로카(La Roca) 교도소로 이송됐다.
그는 지난 2016년 강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마나비(Manabí) 해안 지역 재건 사업과 관련해 공금 유용혐의로 체포되어 구치소로 이송된 바 있었으며, 현재 횡령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또한 뇌물수수와 불법 연루 혐의로 두 건의 유죄 판결을 받아 8년 형을 선고받은 후 가석방 혜택을 받지 못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두 형을 합쳐 5년 가까이 복역한 후 다시 감옥으로 돌아와 복역을 마칠 예정이었다.
2023년 12월 중순부터 글라스는 자신을 정치적 탄압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키토에 있는 멕시코 대사관에 머물며 망명을 신청해왔다. 멕시코 정부는 그의 망명을 허가했는데, 이에 에콰도르 경찰이 대사관을 급습하게 된 것이다.
AMLO 멕시코 대통령은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Fernando Villavicencio) 전 에콰도르 대선후보의 살해와 다니엘 노보아(Daniel Noboa) 대통령의 당선을 연결시키는 발언을 계속하자 에콰도르 정부는 라켈 세루르(Raquel Serur) 멕시코 대사를 추방했다. 그 이후 글라스 전 부통령의 망명신청이 멕시코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글라스가 부통령 재직당시 대통령은 라파엘 코레아(Rafael Correa)로 좌파로 분류되는 정치인이다. 현재 노보아 대통령은 중도 우파성향으로 분류되고 있다.
페루에서 외교부장관을 지냈던 디에고 가르시아 사얀(Diego García-Sayán) 전 미주 인권 재판소장은 BBC Mundo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멕시코 대사관에서 일어난 사건은 매우 심각한 사안이며, 제복을 입을 군대나 경찰이 타국가 외교공관에 들어온 것은 국제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가르시아 전 장관은 에콰도르 정부 측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매우 심각한 사건이며, 지난 2022년 니카라과에서 오르테가(Ortega) 정권이 미주기구 공관에 침입하여 전 세계의 비난을 받은 사실을 회상했다.
그는 두가지의 사안을 지적했다. 경찰의 타국가 외교공관 침입은 외국 영토는 아니지만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공간임에도 국제법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1954년에 맺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사이에 맺은 협약인 카라카스 협약을 위반했다는 점이다. 이 협약에서는 외교 망명권리에 대한 존중을 명시화 했다.
사얀 전 재판소장에 따르면, 외교 망명에 관한 미주 간 규범을 엄격하게 살펴보면 에콰도르 정부가 하고 있는 일에 찬성할 만한 확실한 논거는 없으며, 심지어 약한 논거도 없다고 밝혔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에콰도르에 주재한 멕시코 대사관은 면책과 특권이 남용됐고, 글라스 전 부통령의 망명은 기존의 법적 틀에 위배됐다” 주장하고 있다. 그는 그러면서 “모든 대사관의 목적은 단 하나, 국가 간 관계 강화를 목표로 하는 외교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이라고 말한 뒤 “에콰도르는 주권 국가이며 어떤 범죄자도 면책받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보아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샤안 전 페루 외교장관은 그의 주장에 더 많은 근거가 필요하며, 정부가 자국의 외교 공관이 권리를 초과하고 있다고 판단할 때, 이 문제는 먼저 외교부에서 외교부로 공식적으로 전달돼야 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경찰이나 군사력을 사용하여 외교 공관에 침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가르시아 전 장관은 그러면서 이 사건이 라틴아메리카 지역 국가들의 공통적인 문제, 예를 들면 마약밀매문제 같은 이슈의 원활한 상호작용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정부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본보기가 될 수 있지만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해 보인다고 전했다.
에콰도르가 몇 달째 비상사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주요 범죄 조직의 수장들을 체포하는 데 있어서는 그다지 설득력 있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가르시아 전 장관은 지적했다. 그는 에콰도르와 같은 나라는 치안수준을 높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에콰도르 당국은 강력한 범죄조직 소탕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콰도르 정부가 체포한 호르헤 글라스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에콰도르 부통령을 지냈다. 자국 내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2월부터 멕시코 대사관에서 망명생활을 해왔다.
가브리엘라 솜메르페르드(Gabriela Sommerferld)에콰도르 외무장관은 지난 6일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거나 기소된 사람들이 법원에 의해 망명을 허가받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다”며 대사관 습격 결정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유럽연합 EU에서도 에콰도르 정부의 이 같은 행위를 비난했다. 호셉 보렐(Josep Borrell) 유럽연합 외교정책 수석대표는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1961년 비엔나 협약을 명백히 위반한 키토 주재 멕시코 대사관 건물 침입을 규탄한다. 국제 외교법을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전했다.
스페인 정부도 지난 6일 에콰도르에 “국제법을 존중하고 스페인의 형제 국가이자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회원국인 멕시코와 에콰도르 간의 화합”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