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자의 역사이야기-⑭ 고려는 왜 멸망했을까?
개국 제12회 위화도 회군-개경 시가전
사진 : KBS 드라마 정도전 중
이성계가 이끈 반군세력들은 회군 10일만에 개경에 도착했다. 그들은 5만 대군과 그 속에는 이성계의 가별초 정예병도 포함돼 있었다. 최영이 이끄는 군사들은 5천의 군사만이 개경 도성을 지키고 있는 상태였다.
최영은 이성계에게 격문을 보냈다.
‘이성계 그대는 요동정벌의 대의를 저버리고 전하의 명을 어긴 역도의 수괴로서 그대의 죄는 죽음으로 면치못할 것이다. 내 반드시 그대의 수급을 잘라 성문 밖에 효시할 것이다’
그러자 이성계는 전령을 통해 말을 전했다.-‘성문을 열어주면 장군의 목숨만은 살려주겠소’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이성계의 우군은 우회해 개경의 숭인문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조민수의 좌군은 서쪽의 선의문을 공격했다. 최영의 성안의 군사들은 화살 공격을 주로 감행했다. 이성계와 조민수 군은 공성차를 동원하여 성곽을 부수면서 성을 점령하기 위해 군사들은 사다리로 성벽을 타고 올랐다.
그러나 5천의 병력으로 요동정벌을 위한 5만의 정예군을 당해내기에는 쉽지 않았다. 성문은 이내 곧 열렸으며, 개경 도성안에서 시가전이 전개됐다. 이성계의 요동정벌군은 궁궐로 진입하기 위하여, 최영의 관군들은 이를 막기 위해 서로 사력을 다해 백병전을 감행했다.
반나절이 지나자 관군들은 대궐 앞까지 밀려났다. 대궐까지 먼저 밀어부친 군대는 조민수측 군이었다. 이성계 군까지 대궐 앞까지 도착하자 고려 관군은 군대를 뒤로 물려 대궐사수에 총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이에 관군과 함께 대궐까지 들이닥친 반군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으며, 최영을 사로잡았다. 이제 고려 반군과 관군의 입장이 바뀐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최영은 반란군의 수괴가 되어 고봉군으로 유배를 떠났다.
최영은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전쟁에 나서서 단 한번도 진적이 없었다. 그러나 자식처럼 믿고 아꼈던 이성계에게 단 한 번의 패배로 귀양을 떠나 목숨까지 잃게 됐다.
최영은 죽기직전 이 같은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내 평생 욕심으로 세상을 살았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나,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면 내 무덤에 한포기의 풀도 자라나지 않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억울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백성들이 많았다고 기록됐다.
그러나 현재 그의 무덤을 가보면 풀은 자라나고 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최영은 자신의 부친이 말한대로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삶을 실천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단지 정치적 권력에 대한 욕심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역사학자는 그를 가리켜 ‘청렴한 권력자’로 부르기도 했다.
이성계와 최영,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었던 그들… 이성계도 최영도 인생 막바지에 겪었던 몇 안 됐던 패배가 모든 것을 앗아가는 결과로 귀착됐다.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