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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자의 역사이야기-열 일곱번째 이야기, 고려는 왜 멸망했을까?

개국 제16회 단심가, 선죽교 그리고 개국

사진:선죽교

이성계의 낙마소식은 바로 정몽주의 귀에 들어갔다.

– 그게 정말이더냐.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졌다고?

–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사옵니다, 대감. 생사여부까지 확인을 못했습니다만 들리는 말로는 현재 거동자체는 할 수 없다고 전해들었사옵니다.

그가 이성계 쪽에 심어놓은 세작의 말이었다. 정몽주는 바로 궁으로 향해 공양왕과 독대했다.

– 전하, 이제 기회가 왔사옵니다. 더 이상 못 올 기회옵니다. 전하!! 지금 바로 정도전,남은, 윤소종, 조준을 추포하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모든 뒷일은 소신이 알아서 하겠나이다. 소신만 믿고 진행해 주시옵소서. 한시가 급합니다. 전하.

– 그래 알겠소. 드디어 하늘이 기회를 주시는 구려 포은 대감. 그리하십시다.

정몽주는 공양왕의 교지를 받들어 군사를 일으켰다. 바로 조준, 남은, 윤소종을 체포했다. 그리고 군사들을 이끌고 정도전 집으로 향했다.

– 죄인 정도전은 오라를 받으시오.

–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정도전은 마당으로 나갔다.

– 이보게 포은!! 아니 무슨 일인가?

– 삼봉! 어디 감히 천민 주제에 재상자리를 넘보는가! 국문이 열릴 것일세. 이 모든 걸 이실직고 해야할 것이야!

정몽주는 정도전을 체포하여 끌고 나갔다.

이성계의 낙마소식과 사대부들의 체포 소식은 개성에 있는 이성계의 집에도 이미 알려졌다. 이성계의 경처 강씨 부인은 장자인 이방과를 비롯한 이성계의 자식들과 함께 관련사항들에 대해 논의했다.

이방원이 말문을 열었다.

– 저들이 움직인 연유는 아버님의 낙마 때문입니다. 아버님을 모셔와야 합니다. 건재하심을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저들이 삼봉 대감 등을 함부로 못할 겁니다. 사대부들이 있어야 우리의 새로운 세상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 그런데 방원아, 어찌 네 아버님을 모셔온다 말이냐.

강씨 부인이 물었다.

– 이 사람이 가병들과 함께 해주로 가겠습니다. 가서 아버님을 반드시 모셔오겠습니다. 시국이 급합니다.

이방원은 가병들을 데리고 그의 심복인 조영규, 조영무와 함께 해주로 급히 향했다. 이방원은 조영규에게

– 저들도 문하시중 대감을 노리고 움직일 것이야. 군사들을 매복 시켜놓으되, 저들이 눈치채도록 해야할 걸세

– 아니 나리 그게 무슨 말씀인지…

– 피를 흘려서 좋을 것이 없지 않겠나. 영규, 저들에게 위압감만 주고 공격은 피하란 말일세. 아마 아버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저들도 쉽사리 공격할 수 없을걸세

– 예 나리, 알겠습니다.

– 자, 서두르세

이방원은 해주의 이성계 처소에 도착했다. 처소에는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이 그를 돌보고 있었다.

– 숙부님, 저 방원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오! 방원아, 어서 오너라.

– 아버님은 어떠십니까.

이방원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성계를 바라봤다.

– 좀전에 의원이 다녀갔다가 탕약 드시고 잠시 눈을 붙이셨다. 이젠 나이도 있으시고 예전같진 않으신 것 같구나.

– 여기서 이러시고 계시면 안됩니다. 아버님을 개성으로 모셔야 합니다. 숙부님.

– 그게 무슨 말이냐. 아직 거동도 불편하신데.

– 지금 삼봉 대감을 비롯한 우리쪽 사대부들이 정몽주쪽에 모두 붙들려 갔습니다.

– 뭣이?? 이거 큰일 아니냐.

– 네 숙부님, 제가 확인한 바론 이쪽으로 정몽주쪽 군사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걱정마십쇼. 아버님 가시는 길에 군사를 매복해놨으니 저들이 함부로 준동하진 않을 것입니다.

– 그래, 그러자구나. 저 형님, 형님! 일어나셔야 할 것 같소, 형님

– 아버님, 지금 사안이 급합니다. 제가 모시겠사옵니다. 저 방원입니다.

모든 자초지종을 들은 이성계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교자에 앉아 이지란과 이방원 그리고 군사들의 호의를 받으면서 개성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계는 보란듯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앉아있었다. 이를 본 정몽주측 군사들은 이성계를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다. 그들이 살아있는 이성계를 공격한다고 할지라도 이지란과 함께 있는 그들은 고려최강의 가별초 군사들이기 때문이었다.

정몽주가 보낸 군사들은 그의 집에 당도하여 상황을 보고했다.

– 그래 어찌 됐느냐. 이성계는?

– 송구합니다. 대감. 이미 이지란과 이방원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이성계를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 뭣이?

– 거기에 이성계 문하시중 대감은 상당히 정정해보였습니다.

– 살아있었다? 이런!! 낭패로고…

정몽주는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오백년의 고려가 이제 끝나가는 것인가…’

이지란, 이방원은 이성계의 개성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밤에 도착했지만 이지란과 이방원, 강씨부인 그리고 이방원의 형제들은 계속 대책을 논의했다. 이지란이 이방원에게 물었다.

– 형님을 댁으로 모셨으니 나도 한시름 놓았네. 이제 어쩔 셈인가?

– 저들도 이미 아버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알았으니 함부로 어쩌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 그래도 방원아, 그들을 구출하는 건 다른 문제 아니겠느냐. 저들이 어떤 명분을 붙여서 전하 교지를 받아내서 죽이는 것은 손쉽게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

이성계 둘째 아들 이방과였다.

– 그렇습니다. 형님. 그래서 달리 방법이 없겠습니다. 죽이는 방법밖에는…

–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방원아. 죽이다니 지금 농을 할 때가 아니지 않느냐?

– 농이 아닙니다. 형님. 지금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 모두 물거품이 됩니다. 정몽주 세상이 될 겝니다. 정몽주 세상이 안돼도 무인정권으로 세상이 흘러갈 겁니다.

– 제가 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형님들, 어머니, 가만히 계십쇼.

그러자 강씨부인이 나섰다.

– 포은 대감은 아버님께서 삼봉 대감 못지않게 아끼셨던 분이다. 아버님 원망이 심하실텐데…

– 걱정마십쇼. 어머님. 이 모든 게 아버님을 위한 길 아니겠습니까. 제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아마 조만간 정몽주는 아버님 상태확인을 위해 직접 올 것입니다. 그 때 결행하겠습니다.

모두들 입은 굳게 닫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궁안에 공양왕과 정몽주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포은 대감, 이 다 틀린거 아니오?

– 전하, 일단 성심을 굳게 가지시오소서. 일단 이성계의 손과 발은 묶어 놨으니 저들도 함부로 준동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제가 직접 이성계 대감을 만나러 가겠사옵니다.

– 이미 저들도 다 알았을텐데 위험하지 않겠소?

– 전하, 이제 호랑이굴에 들어가야할 시점입니다. 제가 죽더라도 전하와 고려는 지켜야하지 않겠습니까.

– 아, 그래도 과인은 경을 잃을까 두렵구려.

– 전하, 고려만 생각하시옵소서.

– 알겠소

정몽주는 이성계 집을 방문했다. 이지란을 비롯하여 강씨 부인 이방과, 방의, 방간, 방원이 정몽주를 맞이했다.

강씨 부인이 인사했다.

– 어서 오시지요. 포은 대감, 문하시중 대감께서는 안채에 계십니다.

– 많이 편찮으신지 걱정이 돼 찾아왔습니다.

이방원이 입을 열었다.

– 수시중 대감, 아버님과 말씀 나누시고 잠시 뵈었으면 합니다.

– 어, 그래 방원아! 그리하자구나.

정몽주가 들어간 후 이지란이 이방원에게 물었다.

– 여기서 죽일 셈인가?

– 아닙니다. 숙부님. 마지막으로 그의 생각을 알아볼 계획입니다.

정몽주는 정좌를 하고 앉아있는 이성계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 어서 오시오. 포은, 어찌 이 사람 문병까지 다 와주셨소.

– 아닙니다. 문하시중 대감, 응당 제가 와봤어야죠. 몸은 좀 어떻십니까.

–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예전같지 않구려. 근데 삼봉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소?

– 본인의 신분을 망각하고 함부로 날뛰었으니 죄를 받아야죠.

이성계는 정몽주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 이보시오, 포은. 이 사람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내 그대를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소?.

– 그래서 제가 삼봉을 잡은 겁니다. 기다리지 마십시요. 포기하십쇼. 왜 역도가 되시려 하십니까. 삼봉은 잊으시고 소생과 함께 고려를 다시 일으키시죠 대감

– 그래 알겠소. 어찌됐든 그대와 삼봉 없이는 고려도 새나라도 없소이다.

– 대감, 새나라라는 말씀은 듣기 거북 하옵니다. 그럼 제가 기다려 드리지요. 대감께서 마음을 바꾸실때까지 삼봉은 이 사람이 잡아가두겠습니다.

– 내 그대를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재간이 없구려. 오늘은 이런 말 하려 한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쾌차하면 조정에서 이 일을 논의하십시다.

– 알겠습니다. 대감,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정몽주는 이방원을 만났다.

– 나를 만나고자 한 이유가 따로 있었느냐

– 저에겐 두 대감 모두 다 숙부님이신데 이렇게 두 분이 반목하시니 마음이 아파 포은 숙부께 삼봉 숙부 살려달라고 부탁하려 뫼셨습니다.

– 그건 어려울 것 같구나.

– 알겠습니다. 대감. 제가 시 한 수 읊어드리겠나이다.

이방원의 그 유명한 하여가가 시작됐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萬壽山) 드렁칡이 얽어진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百年)까지 누리리라.

그러자 정몽주는,

– 그래, 너 또한 그런 뜻이 있었구나. 그럼 나도 시로 답을 줘야지

정몽주의 단심가였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 번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그 시를 모두 들은 이방원은 미소를 지으며,

– 알겠습니다. 대감, 소생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그럼 난 답을 한 것으로 알고 이만 물러가겠네.

이방원은 정몽주를 배웅하고, 인사를 나눈 뒤 정몽주는 자신이 타고 왔던 황소에 뒤로 앉아 집으로 향했다.

– 조카님, 어떻셨는가?

– 달리 방법이 없겠습니다. 숙부님.

그리고 조영규와 조영무 형제에게 눈빛으로 무언가를 지시했다.

조영규와 조영무는 말을 달렸다. 그리고 선죽교를 건너고 있는 정몽주를 발견하고 철퇴를 들어 정몽주의 머리를 한 번씩 가격했다. 정몽주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황소에서 떨어져 쓰러졌다. 그리고 명을 달리했다.

이방원은 이 광경을 멀리서 확인하고는 말머리를 돌려 이성계 집으로 향했다. 강씨 부인이 물었다.

– 방원아, 어찌 됐느냐?

– 처리됐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 이미 소식들으셨다.

– 제가 들어가보겠습니다.

– 역정을 내실텐데….

– 어차피 당할 일입니다.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물었다.

– 네 놈 짓이냐?

– …

– 대답을 하란 말이다. 네 놈 짓이라고 물었다.

– 네, 그렇습니다.

– 대체, 왜? 이 애비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는게냐. 포은이 마음을 열때까지 기다린다고 그렇게 말했거늘…

– 아버님, 기다린다고 새국가는 오지 않습니다. 포은은 우리의 적이었습니다. 삼봉대감을 공격한 건 저들이 먼저였습니다. 아버님, 제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했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소자의 마음도 헤아려주십시오.

– 듣기싫다. 포은 없는 새 나라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더냐. 이제 나 이성계 임금이 되도 나라를 도둑질했다는 말만 들을게다. 그런 나라의 임금이 무슨 소용이더냐. 네 놈도 죄값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성계는 칼을 뽑았다.

– 아버님, 베십시요. 전 아버님의 미래를 위해 일을 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 뭐 이유가 없어? 왜 내가 임금이 되면 네 놈한테 세자자리라도 줄 것으로 알았더냐?

– …?

이방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때 강씨가 들어왔다.

– 대감, 이게 무슨 짓입니까. 방원아 어서 나가거라. 어서

이성계는 나가는 이방원에게 크게 소리질러 말했다.

– 네 놈 잘들어라. 넌 이제 내 아들이 아니다.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알겠느냐?

– 네, 아버님이나 이상적인 삶 사십시요. 결국 제 손에 묻힌 이 피로 아버님은 용상에 앉게 될 것입니다.

– 아니, 저래도 저놈이…

이방원은 집을 빠져나갔다.

정몽주가 제거되면서 온건사대부들은 고려 정계에 더 이상 나오지 못했다. 그들이 새 국가의 조정을 장악할 때까지 200여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왕만 교체하면 정도전이 생각하는 새나라 그리고 역성혁명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정도전을 비롯한 급진사대부들은 다음 행보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 배극렴 대감과 문하시중 아드님들이 전하께 적극적으로 양위를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러자 배극렴은

– 아 드디어 이런 날도 찾아오는 군요. 소생이 앞장서겠나이다.

배극렴과 신료들 그리고 이방과와 그 형제들은 매일 공양왕과 대왕대비에게 이성계에게 양위할 것을 지속적으로 건의했다. 말은 건의지만 궁에 군사들을 배치하고 계속적으로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이 왕과 대왕대비에 대한 압박이자 협박이었다.

그들은 옥쇄를 받아 이성계 집을 찾아갔다. 이성계는 세 번 사양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명나라에 조선과 화령이라는 국호 중 하나를 택해줄 것을 건의했고, 명나라는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아 이를 새 나라의 국호로 최종 결정했다.

태조 이성계는 임금이 되는 그 날까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임금이 된 후 두 번 패한다. 그것도 그에게 패배를 안겨준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닌 태종 이방원이었다.

<그 동안 심기자의 역사이야기 ‘개국’을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른 역사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