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에서… 메리다, 아직 못다한 이야기들
죄송합니다. 좀 더 면밀한 취재로 동포여러분들께 다가가겠습니다.
KMNEWS는 창간 1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11일과 12일 멕시코-쿠바 한인 후손 총연합회(회장 울리세스 박) 행사와 당시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발자취를 취재했다. 지금의 멕시코 한인 후손들은 이미 한국어와 멀어져 있지만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모습에서 한국인임을 알 수 있는 궁극적 DNA ‘정’이라는 것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에네켄(Henequén)농장을 방문하면서 용설란이라는 식물을 접하는 순간 초기 한인이민자들이 얼마나 고되고 위험한 노동환경에 처해졌는지 새삼느낄 수 있었고, 그들이 유카탄땅에 도착했던 5월, 기자도 같은 달의 기온(한낮기온 45도)을 느껴보면서 그들은 날씨와 위험을 극복하며 멕시코에 정착해서 살아왔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취재하면서, 기사를 쓰면서 의심되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계속 발견됐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멕시코 한인 후손들과 이 땅에 정착한 우리 조상들에 대한 관심이 많이 부족했는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관심이 없으면 의심도 생기지 않는다. 매년 5월이 되면 한인후손들 행사라 관심없이 참석하고 ‘그렇구나’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그런 줄 하고 넘어간 세월이 너무 길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해 독자분들께 고백, 반성과 함께 나타난 문제들을 공유하여 더 명확한 정보들을 확보해보고자 한다.
먼저 ‘제물포거리’ 취재때다. 왜 제물포길이 됐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는 안내문인데, 제일 위는 스페인어 중간은 한국어 맨 아래는 영어로 적혀 있다. 조금씩 파손돼가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글씨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기자가 2024년 5월 16일자 기사에도 언급했지만, 한인 이민자가 한 술집에서 제물포를 외치다가 그 술집이름도 제물포로 바뀌었고 후에 그 술집이름을 따 그 거리는 제물포거리가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한글 안내문에는 ‘술집’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술집’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안내문이 잘못됐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글 안내문을 살펴보면 ‘고급 바’라는 표현이 나온다. 한국인에게 ‘바(Bar)’라고 하면 TV나 영화에서 양복입은 한 남자가 혼자 술집에 들어와서 웨이터에게 언더락 양주를 주문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즉, 비싼 고급 술집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바’라고 하면 ‘고급 바’를 상상한다.
초기 한인 이민역사를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보면 바로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1905년이라고 상기에 쓰여 있으면, 당시 삶이 어려웠던 한인이 잠시 술집을 방문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고급 바’를 방문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들은 월급도 박봉이었지만 뱃삯, 임차료 등이 채무로 잡혀 있어서 우리가 상상하는 고급 바를 방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한인들의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멕시코 혁명이 지나고 나서부터다.
이 안내문이 한글을 스페인어로 번역했는지 스페인어를 한글로 번역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자는 정확히 번역오류라고 말하고 싶다. 추정하건데 스페인어를 한글로 잘못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데, 스페인어로 설명된 부분 둘째줄을 보면 ‘cantina’라는 단어가 나온다. 우리가 사전을 검색해보면 라틴아메리카에서 칸티나(cantina)는 주점, 술집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기자는 기사에 ‘술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냥 술집이라는 의미로 ‘고급 바’라고 아무 생각없이 쓸 수 있다. 그러나 이 건은 다르다. 우리 선조들이 핍박과 고초를 겪으면서 어려운 노동환경속에서 살아왔는데 고급바를 방문한 것이 되면 영국인 마이어스의 광고가 거짓이 아닌 것이 되고 정말 한인들은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돈을 벌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고급 바’라는 표현이 맞는지에 대해 기자와 동행한 한인들끼리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와 동행한 멕시코 한인 후손들에게 물어봐도 그들은 속시원한 답을 해주지 못했다. 이렇게 세세히 비교해가며 못 봤을 것이다. 그들에겐 한국어가 이미 떠난 상태이기 때문에 비교분석 자체가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리고 2007년에 세워진 이 안내문은 그 동안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못알아보는 글씨가 생기기 시작했고, 점차 훼손돼가는 모습이 보였다. 번역오류가 있고 훼손돼가고 있는데 누가 관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것을 만들어서 공개할 때는 누군지 몰라도 본인의 공으로 돌리면서 온갖 자랑을 다 했겠지만 누가 관리하는지는 공개되지도 않고 관리하는 사람의 노고를 알아주지도 않으니 17년이 지난 시점에도 번역오류는 그대로 돼있고, 훼손 방치돼 있을 뿐이다.
KMNEWS는 날짜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취재가 이뤄지지 않아 동포 여러분, 독자 여러분께 깊은 사죄를 드린다.
5월 4일은 한인 이민자의 날이다. 2021년에 연방의회에서 정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한인 이민자의 날을 정할 때 각종 재외동포언론사 등에서는 5월 4일 초기 이민자들이 멕시코에 발을 디뎠다고 표현했다. 또 어떤 신문에는 그 날이 이민자들이 멕시코 영해에 처음 들어온 날이기 때문에 한인 이민자의 날을 그날로 정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떤 한인 후손은 한인 이민자들이 멕시코에 도착한 날은 5월 15일인데, 15일은 스승의 날 등 날짜가 겹치므로 정하기 제일 가까운 날인 4일로 정하지 않았을까라는 말도 했다. 유카탄(Yucatán) 프로그레소 (Progreso) 항구에 도착한 날이 14일인데 그 때가 더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즉, 왜 5월 4일로 정했는지 의견도 분분하고 명확하지 않다. 배를 타고 처음 도착한 날은 5월 11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5월 12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인들은 처음에 와하카(Oaxaca) 살리나 크루스(Salina Cruz)항구에 도착했다. 그 후 유카탄(Yucatán) 프로그레소(Progreso) 항구에 도착한 것은 5월 14일이다. 실제 에네켄 농장에서 일은 시작한 날은 15일로 알려져 있다.
날짜가 명확하지 않으니, 일부에선 4일, 11일, 14일, 15일에 도착했다면서 제각각이다. 그리고 멕시코 지리에 대한 무지도 한 몫 한다. 멕시코에 사는 사람이라면 와하카와 유카탄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인식하지만 멕시코 지리를 잘 모르면 바다가 있는 가까운 곳으로 오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즉 그곳이 그곳이니 14일 혹은 15일 처음 멕시코땅을 밟았다고 해도 상관없게 된다.
5월 4일로 정했다면 왜 5월 4일로 정했는지 확실하게 공개 됐어야 했다. 그러나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메리다(Mérida)시는 5월 4일을 한국의 날로 정했다. 이런 언어적인 부분도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히 취재를 못한 KMNEWS도 많은 반성을 하고 있고, 명확히 취재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자 한다. 이들의 역사를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초기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100년후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후손들이 잘못 알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도 아프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날짜 부분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자료를 가지고 계시거나 알고 계시는 분은 KMNEWS report.kmnews@gmail.com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