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자의 역사이야기-⑩ 고려는 왜 멸망했을까?
개국 제8회 무진피화
<사진-조반:나무위키>
1387년, 우왕 13년 12월, 염흥방 집안 노비 이광이 전 밀직부사 조반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1387년의 염흥방… 나는 새도 떨어뜨린 다는 당시 권세가 이인임의 최측근이다. 당시 염흥방의 노비라면 본인도 웬만한 고려 귀족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광이 조반의 밭을 빼앗았다. 조반이 아무리 재상을 지냈다고 하나 결국 그도 전직관료라 염흥방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정사정하여 밭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후 이광은 이를 다시 뺏고 조반을 모욕하고 더욱 횡포를 부렸다.
그러나 조반도 고려귀족이라 모욕까지 당한 마당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말을 탄 수하 수십 명을 데려가 이광의 목을 베고 그의 집에 불을 질렀다.
염흥방은 이 소식을 듣고 분노가 극에 치달았다.
– 당장 수하들을 시켜 조반과 그의 가족을 체포하라!! 감히 이 염흥방의 사람을 건들다니, 이는 분명 반란을 도모하려는 수작일게다. 내 반드시 심문하여 진위여부를 낱낱이 밝힐 것이야!!
조반은 체포됐고 염흥방의 심문과 모진 고문이 시작됐다. 염흥방은 조반에게 반란의 죄목을 뒤집어 씌워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 했다. 조반이 반란을 획책했다는 자백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조반은
– 예닐곱 명의 탐욕스러운 재상들이 노비를 사방으로 풀어 남의 토지와 노비를 빼앗고 백성을 해치거나 학대하니, 이들이 더 큰 도적이다. 지금 이광이라는 자를 참한 것은 백성의 도적을 제거하고자 한 것일 뿐이다. 어찌 모반이라고 하는가.
라고 외치며 염흥방 등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일파만파 고려조정에까지 퍼져 나갔다. 이 사건은 고려조정내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됐다. 이제 우왕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최영과 이성계를 궁으로 불렀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경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이리로 불렀소. 먼저 그들을 불러 진상을 밝히려 했으나, 병을 핑계로 궁에도 들어오지 않고있소.
먼저 최영이 말했다.
-전하, 어찌 재상의 전답을 뺏어 사리사욕을 취하겠나이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하명만 하시면 신들이 당장 염흥방과 임견미 등을 처리하겠나이다.
-이성계 대감, 경의 의견은 어떻소. 말씀해보시요.
이성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정도전과 의논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정도전은,
– 장군, 이제 하늘이 우리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금 그들을 추포하지 않으면 우리의 대업은 진전할 수 없습니다.
– 좋소, 그건 그렇게 하십시다. 그런데 이인임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 아무리 권세가 막강하다고 하나 세월, 건강 앞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아마 최영은 이인임 정도는 살려두려 할 겝니다. 그에 그냥 따르십쇼. 어차피 병약한 상태입니다.
– 거참, 이번에 이인임을 처리했으면 했는데…
– 이인임을 처리하고 싶으신 마음, 소신 또한 이해합니다. 그리고 동의합니다. 그래서 제가 장군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같은 고려의 명장이시지만 장군과 최영 장군은 이처럼 다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최영 장군의 뜻을 따르시지요.
-알겠소. 내 삼봉선생 의견대로 하리다.
-문하찬성사 대감, 전하께서 하문하시지 않는가. 어서 답을 드리시게나.
이성계는 답했다.
– 전하, 신 문하찬성사 이성계, 최영 대감 말에 공감하오나 한가지 여쭙고자 하는게 있나이다.
– 말해보시오.
– 문하시중 이인임을 어찌할 것인지 하명해 주시옵소서.
잠시 우왕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 일단 그 일은 추후에 논의합시다. 일단 염흥방부터 잡아들이고 임견미의 죄상도 발견되면 그들부터 함께 처리합시다. 그리고 억울하게 잡힌 조반과 그의 가족들을 당장에 풀어주도록 하시오.
최영, 이성계 모두
– 어명에 따르겠나이다.
어전을 나오면서 최영은 이성계에게,
– 지금 염흥방 사태가 급박한데, 어찌 이인임까지 전하께 여쭈었는가. 어서 채비하세나.
이 소식들은 우왕의 귀의 들어가기 전에 당시 고려조정 최고 권력자 이인임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인임은 염흥방과 임견미를 불러들이려 하였다. 그러나,
– 뭐, 지금 술판을 벌여(콜록콜록)? 당장 그 둘을 우리집으로 오라하게. 얼른, 얼른!! 이보게 하륜, 내 이 자들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나라 전체가 최영, 이성계한테 넘어가게 생겼네.
하륜은 한 숨만 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임견미 집에 들이닥친 최영과 이성계. 최영은 크게 외쳤다.
– 염흥방이 임견미 집에 있다 들었다. 당장 염흥방, 그를 숨겨준 임견미를 추포하라!! 전하의 어명이다.
군사들에게 끌려나온 염흥방, 임견미, 최영과 이성계 앞에 무릎 꿇었다.
– 이 간나 쉐끼들, 당장 끌고가라!
이성계의 명에 따라 군사들이 그들을 끌고 갔다. 물론, 이 소식은 이인임에게도 들어갔다.
– 이 미련한 인사들을 보았는가. 그런 일을 벌여 놓고도 술판을 벌여!! 어헉
이인임은 오열하며, 정신을 잃었다.
무.진.피.화. 고려말 권문세족들의 탐욕이 극에 달한 사건이다. 일반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다 못해 같은 귀족들의 재산을 탐내다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다른 이들의 땅을 빼앗은 모든 권문세가들의 조사가 이뤄졌고, 임견미, 염흥방은 이 사건 조사를 통하여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 사건으로 권문세족들이 숙청당한 것은 맞지만, 이인임의 권문세족들이 숙청을 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결국 예상대로 최영의 뜻에 따라 이인임은 목숨은 건진 대신 유배를 떠났고, 하륜 또한 곤장형을 받고 잠시 정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최영은 문하시중, 이성계는 수문하시중, 사대부 스승인 이색은 판삼사사에 임명됐다.
이인임은 유배를 떠나기 전 하륜에게,
– 내가 결국 자네를 지켜주지 못했구만. 난 좋은 주군은 아니었네 그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좋은 주인을 만나시게나. 자네는 재주도 출중하니 계속 이렇게 살 사람은 아니야. 세상의 흐름을 잘 보시게나. 그럼 주인이 보일걸세…
멀리서 이 사건을 본 정도전은 한참을 중얼거렸다.
– 결국 문제는 땅이로구만. 그 땅 때문에 흥하고 망하니… 이게 우선이겠구만
집정대신에 오른 최영, 무진피화 사건이 끝난 후 며칠 뒤 우왕의 부름을 받고 어전에 들어갔다. 우왕은 최영에게,
– 문하시중 대감, 과인이 청이 있소. 들어주시겠소이까.
– 전하, 하명 하시옵소서.
– 명이 아니오, 최영 대감. 내 간곡한 청이니 꼭 들어주시면 좋겠소. 내 장인이 되어 주시오. 경의 딸을 내어주시오. 내 이리 청하오.
– …
<다음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