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자의 역사이야기-⑩ 고려는 왜 멸망했을까?
개국 제7회 이인임의 당여가 되어
<사진 KBS 드라마 ‘정도전’ 임견미/배우 정호근>
– 아, 삼봉선생, 무례를 용서하시구려. 내 미리 아우에게 언질을 주지 못했소이다. 지란아 뭐하냐. 선생께 차라도 대접하지 않고?
정도전을 대하는 이성계 행동이 사뭇 달랐다. 정도전은,
-거렁뱅이 사대부를 이렇게 대접해주시니 역시 듣던대로 장군께서는 고려의 대영웅이십니다.
-이제 시간이 없으니 본론으로 넘어가십시다. 그래 내가 어찌하면 되오.
-장군, 무릇 정치란 상대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셔야 합니다. 이인임과 임견미, 염흥방 등 그 권문세가들이 백성도 돌보지 않고 그들만 호의호식한다고 해서 무작정 덤비시다가는 백전백패합니다.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오.
-따라서 장군, 지금으로선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이 장군을 믿게 해야 장군도 살고 훗날 이인임을 칠 기회도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이인임은 의심이 많은 자라 사돈 정도는 맺어야 의심도 어느 정도 풀릴 겁니다. 장군께서 이인임의 당여가 되신다면, 이인임에게도 크게 손해보는 일도 아닙니다. 현재 따로 분리된 동북면의 군권을 장군과 공유하는 꼴이 되니까요.
-좋소, 내 어떻게 하면 되오.
-일단 이인임에게 서찰을 쓰십쇼. 단, 당여가 되겠다는 진심을 담아서 쓰셔야 합니다. 소인이 써드리고 싶지만, 눈치 빠른 그 자가 장군이 쓰지 않았다는 걸 금방 알아챌 갭니다. 이인임이 만나자고 하면, 그 때 개경으로 향하시면 됩니다.
-알겠소이다. 내 선생 뜻에 따르겠소.
-감사합니다, 장군. 하오나 장군, 그들과 함께 하는 건 일시적입니다. 장군께서는 권문세가가 아니시옵니다. 잊지 마소서. 개경에 당도하시면 저와 포은, 그리고 제 스승님 등과도 함께 해주셔야 합니다.
-내 삼봉, 포은 선생 어찌 잊겠소이까. 개성에서 봅시다. 앞으로 바쁘겠구만, 갈 길이 머니 어서 가시구랴.
-알겠습니다, 장군 어서 준비 하시지요. 소인도 이제 바로 개경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먼길 조심하시요.
-지란아, 지필묵좀 가져와라
-예, 성님
개경으로 향하는 정도전,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의 입고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냥, 동북면에 살아도 의심은 받겠지만 사는데 큰 지장은 없었을 텐데… 참으로 야심이 많은 사람이었구만, 내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골랐어 … 흐음’
개경 광평군 문하시중 집정대신 이인임의 집, 이성계가 그를 찾았다. 이인임이 물었다.
-아니, 고려의 대영웅께서 어찌 이 소생을 찾으셨소이까.
-문하시중 합하, 당치도 않으십니다. 어찌 소생이 영웅이라 불릴 수 있겠소이까. 단지 변방을 지키는 일개 장수일 뿐입니다.
-하하하하, 장군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소신도 몸둘바가 없소이다. 자, 이제 용건을 말씀해 보시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둘러 말해도 되오. 시간은 많으니.
이성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아니, 장군 이게 무슨 짓이오. 얼른 일어나시오.
-소장, 이번만큼은 무릎 꿇고 문하시중께 제 진심을 전하고 싶습니다. 합하의 당여가 되고 싶습니다. 당여가 되게 해주십쇼. 제발 소인 좀 살려주십쇼. 간청드립니다.
그 얘기를 들은 이인임. 무릎 꿇은 이성계를 앞에 두고 다시 좌정했다.
-내 당여가 되겠다? 내 어찌 믿고 그대를 당여로 받아들인단 말이요.
-제 여식을 합하께 바치겠나이다.
-뭐, 뭐요? 장군의 딸을?
-그렇사옵니다. 소인을 믿지 못하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 진심을 합하께 전하고 싶습니다.
-자자, 이제 뜻을 알았으니 좌정하시오, 이성계 장군. 천하의 고려 대영웅께서 어찌 이 사람 앞에 눈물을 보이는 게요. 지금 이 사람은 너무 기쁘오. 장군이 이 사람과 함께 해준다면 나 이인임, 천하에 무서울 건 전혀 업소이다. 하하하. 여봐라 임견미 대감과 염흠방 대감한테도 연통을 넣어라. 오늘 이성계 장군 환영술상을 봐야 겠다. 으하하하하
-장군, 저희 집에 좀 더 머물다 가시지요. 괜찮으시겠소이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합하.
이인임 집에선 임견미와 염흥방 그리고 이성계가 자리를 함께 하며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임견미가 이성계에게 술을 권했다.
-아, 장군 제 술 한 잔 받으시오. 소신 또한 장군이 너무 무서웠소이다. 하하하.
-장군, 아니 사돈 하하. 혼례는 언제쯤이 좋겠소.
-합하께서 원하시는 날에 따르겠지만 가능하면 빨리 치뤘으면 합니다.
-좋소!!
이렇게 해서 이성계는 그의 경처 소생 딸을 이인임 집안에 시집보내게 된다. 그의 경처는 훗날 신덕왕후가 되고, 그의 딸은 경순공주가 된다. 이렇게 해서 맺어진 그의 사위 이제는 이방원 1차 왕자의 난 때 살해되고 이 일을 계기로 경순공주는 산에 들어가 비구니의 삶을 산다. 1,2차 왕자의 난 이후 그녀 마저도 이성계 보다 빨리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맞는다.
이성계는 이인임과 사돈관계를 맺음으로써 문하찬성사에 임명되어 다시 한번 조정에 진출하게 된다.
이인임의 최측근 당여는 누가 뭐래도 임견미와 염흥방이다. 역사서에 ‘고려말 권문세족들이 소유한 토지는 그 경계가 산과 강이었다’는 표현은 사실 이 둘을 가리켜 하는 말이었다. 조선 말에도 이러한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권문세족들의 가렴주구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더욱이 1386년이 지나면 이인임도 건강이 악화되어 조정일은 그들 둘에게 맡기는 일이 잦았다.
1387년 겨울, 임견미의 집. 이 둘은 그래도 대낮부터 술판이다. 임견미가 염흥방에게 묻는다.
-자네, 또 땅을 얻었는가? 합하께서도 자중하라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재상 땅을 건드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아 그럼 어쩌겠는가. 노비들도 계속 늘어나고 먹여살려야 할 사람도 많은 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뭐라도 해야지. 백성들 땅 뺏는다고 안 그래도 말이 많은데…
-적당히 좀 하세나. 자네 사대부였네. 잊었는가?
임견미와 염흥방, 젊은 시절 그들은 한 명은 신흥무장 또 다른 한명은 신진사대부였다. 염흥방은 지난 날 이인임의 친원정책으로 탄핵상소를 올린 적이 있었으나, 또다시 그의 회유로 이후 권문세가의 길을 걷게 됐다.
또 다른 신진사대부, 훗날 이방원의 책사가 되는 하륜도 이인임 집안 사람이었다. 현재 사람들 중에는 이 시기를 가리키면서 과연 권문세가와 신진사대부는 결국 같은 사람이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대감마님, 궁에서 전하께서 찾으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우왕이 임견미를 찾고 있다. 그러나 임견미는,
-오늘은 몸이 안 좋으니 다음기회에 찾아 뵈옵는다고 전하거라.
-염흥방 대감께도 전갈이 왔는뎁쇼?
-나까지? 왜 자꾸 찾으시는 겐가? 오늘은 안되고 내일 가세. 이거 취해서 찾아 뵙겠는가. 하하하
<다음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