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자의 역사이야기-⑩ 고려는 왜 멸망했을까?
개국 제6회 두남자의 역사적 만남
1383년 삼봉 정도전은 동북면병마사 이성계를 만나기 위해 함주막사에 도착했다. 이성계의 가별초 군사를 직접 목격한 정도전…
-‘포은(정몽주)이 말한대로 망해가는 나라의 군사들 같지는 않구나’
회상에 잠기면서 정몽주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이보게, 삼봉 몰골이 그게 뭔가. 그 동안 글공부를 봐준다고 들었네만 어찌된 일인가?
-서당에서 글공부 가르치다가 다 말아먹고 이곳 저곳 유랑하면서 거렁뱅이로 살고 있네
-아니 이 사람아, 유배도 풀리고 했으면 벼슬이라도 할 생각을 해야지 내가 더 답답하구만 그려. 내가 한 번 자리를 알아봄세
-난 자네들보다 오래전부터 이인임 눈 밖에 난 지라 소용없네. 거기에 권문세족 놈들이 서당에다 세금을 메기지 않나 원… 아 참 자네 그 동북면 그 자와 전장에 함께 나갔다고? 그 얘기 좀 해주시게나. 그게 듣고 싶어 찾아 왔으이
정도전은 동북면병마사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안달이 났다. 정몽주는 뛰어난 군사지휘능력과 천부적인 활솜씨로 적장 아지발도를 죽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성계의 이야기를 전하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 얘기를 모두 들은 정도전은,
– 정말 대단한 사람일세 그려, 이 망해가는 나라에서 어찌 그런 장군과 그런 군대가 있었단 말인가.
– 삼봉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누가 듣겠네. 망해가는 나라가 뭔가. 자네 같은 반골기질한테 누가 벼슬을 주겠는가 말일세(웃음).
두 막역지우는 서로 농담과 술잔을 주고 받으며, 밤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정도전의 질문이 계속됐다.
-이보게 포은, 내가 개성에 올 때쯤 들으니 이성계 장군이 개성에서 벼슬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만날 수 있겠는가. 자네가 주선을 좀 해주게.
-아 이 사람아 너무 늦었네. 다시 동북면으로 돌아갔네.
-아니, 왜?
-짐작했으면서 뭘 또 묻는 것인가. 이인임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지. 키워주질 못할 망정 오로지 나라위해 충성하는 장수 하나 죽일 셈인지… 동북면에 이인임이 세작들도 보냈다고 들었네. 그래서 말인데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는가. 최영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이미 늙었고, 고려를 지켜낼 장수는 이젠 이성계 장군 밖에 없네. 내가 이성계 장군에게는 자네 얘기를 다 해놨네.
정도전은 잠시 수심에 잠기더니,
-방법이 왜 없겠는가. 그런데 이성계 장군이 받아들일지 걱정이구만.
-그래 방법이 뭔가! 나에게도 좀 알려주세나. 내가 장군에게 전하겠네.
-아닐세. 내가 직접 함경도로 가서 이성계 장군을 만나겠네. 자네도 곧 알게 될게야. 정말 이성계란 자가 고려를 위해 충성하는 지도 알 수 있겠지
-거 참 막역지우끼리 이러기인가? 알겠네. 내가 미리 서찰을 보내 자네가 간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만 함경도에 이인임 세작들이 워낙 많아서 내가 더는 도와줄 수가 없구만.
-뭐 걱정 마시게. 난세의 영웅이 지나가는 거렁뱅이 선비 밥 한 그릇 안 챙겨 주겠나.
-사람 참…
이성계의 동북면.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던 정도전은 이성계의 의형제인 이지란의 안내로 이성계 막사에 도착했다. 이성계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 삼봉 선생, 내 포은 선생께 얘기 많이 들었소.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군.
-식사는 추후 여기서 하고 가시면 되고, 이 사람을 찾아온 용건이 무엇이요.
이성계는 정도전이 찾아온 이유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속내를 떠보고 싶었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물음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이 곳 막사까지 오면서 보니 이인임의 세작들이 사방에 깔려 있음을 보고 왔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까지 저를 의심할 줄을 몰랐습니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장군, 장군의 가별초가 있지 않습니까. 이만한 군사들을 가지고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뭐요!
이성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면서
-대체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인게요! 날 도와주러 온 건 맞기나 하오!
-(웃으면서) 장군 진정하십쇼. 저도 포은처럼 글을 읽는 사대부입니다. 설마 사대부가 이런 방법을 장군에게 권장하겠습니까. 단지 군사들의 기개가 넘쳐 이 세상 모든 어려운 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드린 말씀이었소이다. 이제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장군께서 살아남으시려면 제가 말씀드리는 방법만이 있을 뿐이고 장군께선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말씀부터 해보시오.
-이인임의….당여가 되십쇼!
-뭣이!!
이성계는 칼을 뽑아 정도전의 목에 겨눴다.
-이번엔 진심이오?
-이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냥 당여가 아니라 사돈을 맺으셔야 합니다. 장군께는 이것이 살 길입니다.
-이런 간나쉐끼가 따로 없구만. 당장 썩 물러가시오. 내 포은과 동무라고 들어서 여기까지 배려해준거요. 안 그랬으면 당신 목이 날아갔을거요.
이지란은 정도전을 끌어내려 했다. 끌려 나가면서 정도전은,
-장군, 정치도 전쟁과 똑같소이다. 상대를 기만하고 속이는 겁니다. 정치도 적이 나를 업신여길 때, 나를 확실히 믿을 때 그 때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 제 말 기억하셔야 합니다. 장군!!!.
이지란은 정도전을 끌어내면서 다시한 번 꾸짖었다.
-어쩌자고 장군께 그런 말을 내뱉었소? 저기 병졸들 막사에 찬 준비하라고 했으니까 가서 드시고 떠나시던 길 떠나시오. 다시는 이곳에 찾아오지 마시오.
-아니요. 아직 장군께선 확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닷새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식사는 사양하겠습니다. 욕을 아주 많이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부르군요. 하하
정도전은 다음을 기약하며 떠났다. 이성계 막사로 다시 들어간 이지란,
-형님, 어떻소 괜찮습니까.
-나야 뭐, 그건 그렇고 지란이 네가 보기엔 어떻디? 저 정도전이란 사람 말이다.
-제가 보기엔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온 것 같진 않고, 포은선생이나 목은(이색)선생이 추천할 정도면 빈말하고 떠날 사람은 아닌 것 같소.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한다. 워낙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나서 말야.
이성계는 수심에 잠겼다. 정도전이 나가면서 했던 말이 그의 뇌리에 계속해서 남아있었다. ‘남이 나를 업신여길 때, 남이 나를 확실히 믿을 때…’ 그리고 닷새 후,
-아 이 사람 진짜왔소? 내가 다신 오지 말라고 했잖소. 우리 형님께서 용서치 않을거라고 말이요.
-죽을 땐 죽더라도 장군의 확답을 들어야겠습니다. 만나게 해주시요.
-그거 참… 썩 물러나시요!!
-지란아!!
-예, 형님
-어찌 삼봉선생께 무례하게 대하느냐, 얼른 안으로 뫼시지 않고!!
다시 이성계의 막사로 향하는 정도전, 그의 입가엔 미소가 돌기 시작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