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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자의 역사이야기-⑨ 고려는 왜 멸망했을까?

개국 제5회 드디어 정계로 진출한 이성계!!

1380년 황산대첩에서 지대한 공을 세운 이성계는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군이라지만 정치에서는 아직 신출내기와는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이인임을 필두로 한 권문세족들은 그를 부원배라고 지칭하면서 하대했고 더군다나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온 상황이라 당시 조정대신들의 시기, 질투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를 후원해주는 최영이 있었다고는 하나, 최영 또한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전장에서는 백전백승의 장수지만 정치 9단 이인임과 맞서기는 역부족이었다. 나름 이성계가 조정에서 국가개혁을 부르짖어도 그런 개혁안들이 모두 권문세족의 이해관계와 충돌됐기 때문에 번번이 좌절당할 수밖에 없었다.

-최 대감, 조정일이 전장 보다 더 어렵습니다. 차라리 왜구놈들 때려 잡는기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나만큼 자네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이 누가 있겠는가. 나도 처음에 정말 힘들었네. 지금도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 나아질 게야. 그래서 말인데 도당에서 의견 내놓기 전에 나랑 좀 먼저 상의를 하는 것이 어떻겠나. 그래야 내가 자네 방패막이 되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

이성계는 아무말 없었다. 아무리 그가 동북면에서 가별초를 이끌며 기반을 다져 놨다고는 하나 그를 후원해 주는 사람은 본인 세력 하나 없는 최영뿐이었다. 그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세력이 절실했다.

그래서 그는 정몽주, 이색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이 시기 고려말 신진사대부라고 불리는 정몽주, 정도전, 조준, 권근, 하륜 등은 모두 이색의 문하생이었고, 그 중 정도전과 정몽주는 서로를 막역지우라 부르며 이색 문하생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문하생들이었다.

고려 개경의 삶이 편치 않았던 이성계는 이색과 정몽주를 만났다.

-장군, 어떻습니까. 정치 쉽지 않으시죠. 차라리 황산에서 왜구 잡던 시절이 그립지 않으십니까?

정몽주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많이 그립습니다. 저하고 정치는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동북면으로 돌아가야 할 듯 싶습니다. 백성들 위해 일해보겠다고 왔지만…

-정치판도 전쟁터이긴 하지만 몸으로 싸우는 전쟁터가 아니라 머리로 하는 전쟁터입니다. 장군께서는 공도 크게 세우신 덕에 백성들의 신임을 받고 계시는 터라 이인임이 장군을 가만두지는 않을 겁니다.

이색이 말했다.

그러자 정몽주가,

-원래 전장에서 공을 세운 장수는 양날의 칼 같은 존재입니다. 살려 두자니 불편하고, 내친다면 외적을 누가 막겠습니까. 아마 이인임이 장군을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일단 동북면으로 가 계심이 어떻겠습니까? 일단 이인임을 피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막역지우를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삼봉 정도전이라고 아주 능력이 뛰어난 사대부입니다. 현재 유배가 풀렸는데 전국각지를 유랑 중에 있습니다. 아마 장군의 살길을 열어줄 계책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제가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니 연락이 닿으면 장군께 천거 하겠나이다.

-아. 전에도 포은(정몽주) 선생께서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삼봉 선생이라고 했지요. 내 곧 동북면으로 돌아갈 테니 연락이 닿으면 꼭 만나게 해 주시오.

몇시간의 대화가 이어진 후 이성계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이성계는 집으로 향하며, ‘아 정말 사대부들은 지략이 뛰어나구나. 전장에만 있어봤으니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 당연하지. 진작에 나도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고…’ 한탄해 하며,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여 지친 몸에 잠시 쉬려 하는 순간…

-아버지!!, 아버지 저 붙었습니다.

-갑자기 왠 소란이냐!!

-소자 과거에 합격했습니다.

-뭐! 방원아 그게 정말이냐.

-네, 아버지!!

-야, 우리 집안에도 글 읽는 선비가 나왔구나, 경사로구나!! 우리 가문도 사대부가 났구나!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이성계에게 이방원의 과거급제 소식은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모든 피곤이 싹 풀린 듯 모든 집안 식구들과 함께 즐거워했다. 이성계의 경처 강씨도 함께 기뻐했다. 대대로 내려온 무인 집안에서 사대부가 나왔다는 것은 당시 이성계, 이성계 집안에서는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다음 날, 이성계는 조정에서 동북면에 돌아갈 뜻을 이인임과 최영 등 대신들에게 밝혔다.

이성계가 떠난 후 이인임은 ‘조금 더 있었으면, 잡아넣었을 텐데… 정말 운이 좋은 친구로구만, 그래도 동북면을 계속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겠어’

1383년 8월 이성계는 동북면에 침입한 외적 호발도를 가볍게 물리친 후 우왕에게 변방을 편안하게 할 대책인 안변책을 제시했다. 이는 동북면을 지키는 장수로서 국방정책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 집정대신 이인임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보는 이도 있다. 안변책에는 유교경전의 문구도 인용됐기 때문에 정몽주나 정도전 등이 작성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해선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안변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왜구와의 싸움에 대비해 상시 군사 훈련을 시행할 것

2. 사적으로 백성을 착취하는 군벌과 호족을 엄단해 군량을 확보할 것

3. 토지 제도 붕괴로 무너진 군제와 유랑하는 백성을 보호할 것

4. 유능하고 공정한 인물을 수령으로 선발해 지방을 통치할 것

그해 가을, 한 허름한 복장에 걸인의 모습을 하며 자신을 사대부라고 지칭하는 선비 하나가 이성계 동북면 함주막사에 당도했다.

– 소생, 삼봉 정도전이요.

<다음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