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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원폭

지난 6일은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78번째 되는 날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CNN 에스파뇰을 비롯한 각종 멕시코 주요언론사들은 1945년 8월 6일에 있었던 이 사건을 중점 보도했다.

이 당시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첫 번째 투하한 원폭으로 인하여 7만 명 이상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3일 후 나가사키 상공에 두 번째 폭탄이 투하되어 4만 명이 더 사망했다. 이로 인하여 현재까지 미국은 전쟁에서 원자폭탄을 사용한 유일한 국가로 남아 있다고 CNN 에스파뇰은 보도했다. 일본 에너지부와 히로시마시 웹사이트에 따르면, 1945년 히로시마에는 30만 명에서 42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미국 과학자들은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항복한 후인 1945년 7월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당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헨리 스팀슨 전쟁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은 자문위원회에 일본에 원폭을 사용할지 여부를 심의하도록 했다.

미주리주 트루먼 도서관의 문서보관 책임자 샘 러세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위원들 사이에는 공격 결정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스팀슨 장관은 폭탄을 사용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또한 하버드 대학의 찰스 마이어 역사학 교수는 트루먼이 다른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당시 전쟁이 장기화되는 이유를 미국 대중에게 설득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 무기는 잠재적으로 많은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마법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덧붙였다.

일부 역사가들은 소련의 참전이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하여 전쟁을 빨리 끝내기로 한 것에 대한 결정을 촉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러세이는 히로시마가 미국의 네 개의 잠재적 목표 중 하나였으며 트루먼은 어느 도시를 공격할지 결정하는 것을 군에 맡겼다고 전했다. 히로시마는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공격 목표로 선택됐고 며칠 후 나가사키에도 폭격을 받았다. 이에 일본은 1945년 8월 14일 무조건 항복에 동의했다.

1945년 원폭 투하 직후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의 85%가 트루먼의 결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작년 퓨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에 대한 핵무기 사용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비율은 56%로 떨어졌다.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14%만이 원폭 투하가 정당하다고 생각했고, 79%는 정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한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핵 없는 세계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고  지난 6일 마이니치신문 등이 보도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은 기시다 총리는 원폭 투하 78주년 기념식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벌어진 핵 잔혹 행위는 결코 되풀이하면 안 된다”며 “일본은 전쟁에서 핵을 겪은 유일한 국가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