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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도서관,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을 가다.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정적인 개념의 도서관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넘치는 도서관을 멕시코시티에서 만났다. 바로 바스콘셀로스(Vasconcelos)도서관이다. 이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은 영화 ‘인터스텔라’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영감을 줬다고도 알려져 있다.

도서관내에는 각종 문화행사, 공연 등이 이루어지며, 심지어 케이팝 댄스를 연습하는 멕시코 청소년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도서관의 각종 시설물이나 실내 장식품 등을 통하여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책만 읽는 도서관에서 탈피된 새로운 모습의 도서관을 보여주고 있다.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떨어질 것 같은 책장들에 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닫혀 있는 도서열람실에 들어가야만 책들을 볼 수 있는 한국의 도서관과는 다르게 활짝 열려 있는 도서관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2006년 5월 16일 첫 개관, 멕시코 건축가 알베르토 칼라치 설계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은 지난 2006년 5월 16일에 처음 문을 열었다. 올해로 17주년 됐으며 멕시코 건축가 알베르토 칼라치(Alberto Kalach)가 설계했고, 도서관 전체 건물은 7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도서관은 2006년 건립을 위해 2003년 5월 국제공모전을 실시했다. 592팀이 응모했으나 2003년 10월에 알베르토 칼라치와 그 팀이 우승하여 2004년 1월부터 도서관 공사가 실시됐다. 2006년 5월 16일 완공됐을 때, 완공식에 비센테 폭스(Vicente Fox) 당시 대통령이 참석하기도 했는데, 도서관 공사로 9억 5천만 페소가 비용으로 지출됐고 이는 당시 멕시코시티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줬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듬해 건축비리와 설계결함 문제 때문에 문을 닫았다가 2008년 11월 다시 개방됐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때도 잠시 문을 닫았었고 코로나 예방접종 장소로도 이용되기도 했었다.

도서관 건물은 44,000제곱미터가 넘는 규모로 60만 권의 엄청난 양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도서관은 미국의 교육자이자 도서관학자인 멜빈 듀이가 고안한 듀이 십진분류법(DDC)을 쓰고 있다. 참고적으로 한국이나 일본, 중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에는 서구 영어권 방식인 DDC법을 쓰는 데 어려움이 있어 각 나라 실정에 맞는 도서 분류법을 쓰고 있는데 한국은 KDC 분류법을 사용하고 있다.    

바스콘셀로스는 누구인가?

이 도서관의 이름인 바스콘셀로스는 멕시코의 호세 바스콘셀로스(José Vasconcelos)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 호세 바스콘셀로스는 멕시코에서 교육자, 철학자, 정치인, 변호사, 작가 등 다양하게 지칭됐으며, 1882년에 태어나 1959년에 사망하여 30~40대때 멕시코의 격동기였던 1910년 멕시코 혁명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1920년에서 21년까지 우남대학교(UNAM) 총장을 지냈고 1921년부터 1924년까지는 멕시코 교육부 장관에 재직했다. 1929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실패한 후 1941년 부터 49년까지 멕시코 국립도서관장을 맡았다.

1911년 멕시코혁명을 기점으로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íaz)의 33년간 통치가 막을 내렸다. 디아스 대통령 시절 어느 정도의 경제발전은 이뤘으나 엘리트 우대 정책 등으로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고 일반 국민들에 대한 문맹률은 굉장이 심했다.

따라서 1920년대 알바로 오브래곤(Álvaro Obregón)대통령 시절에는 멕시코 국민의 80%가 문맹이었다. 이에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바스콘셀로스는 문맹퇴치를 위해 지역곳곳에 학교와 도서관을 세워 현재까지 멕시코시티에는 약 282개의 도서관과 멕시코 전체에 1,800여개의 도서관이 설치되어 있다.

당시 국민의 80%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멕시코의 혁명과 역사를 알게 하기 위해 벽화운동을 전개했고, 당대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로 하여금 벽화를 그리게 했다.

바스콘셀로스는 당시의 멕시코 국립외교학교를 여성들에게 처음 개방했고 이때 입학한 여성중의 하나가 멕시코의 저명한 화가이자 훗날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가 되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였다. 디에고 리베라가 호세 바스콘셀로스의 의뢰로 국립외교학교의 벽화를 그릴 무렵, 당시 첫 입학한 프리다 칼로를 만나게 됐다. 결국 바스콘셀로스는 두 사람의 역사적 만남을 주선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바스콘셀로스의 교육개혁으로 멕시코의 전체 교육수준이 향상되는 계기가 됐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도서관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서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이라고 명하게 됐다.  

도서관의 랜드마크 – 움직이는 매트릭스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투어는 도서관의 유일한 한국어 가이드인 이윤복 가이드의 설명으로 도서관의 구석구석을 돌면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윤복 가이드는 경기 화성 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다가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잠시 멕시코에 머물게 됐으며,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에서 한인 교민들이나 여행객들을 위해 자원봉사로 가이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 1일 재 멕시코 한인회(한인회장 장원)에서 주최한 106권의 도서기증행사도 이윤복 가이드가 기획한 것이기도 하다.

도서관 로비층에서 안쪽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처음 만나는 열람실이 오른쪽 끝에는 시각장애인실 왼쪽 끝에는 청각장애인실을 만날 수 있다. 한국 도서관의 경우에는 장애인을 위한 열람실이 따로 없지만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은 대형도서관 답게 장애인들을 위한 열람실을 따로 만들었다. 시각장애인실에 들어서면 각종 점자로 쓰여진 책들이 비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실은 문이 자주 잠겨 있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들어가기 어렵다.

시각 장애인실을 나와 오른쪽 복도 쪽으로 계속 걷다 보면 어린이 열람실이 나온다. 어린이 열람실은 아이와 부모가 함께 들어갈 수 있으며, 이 안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줘도 상관없다고 한다.

어린이 열람실을 나오면 도서관 로비층 천장에 맞닥뜨리는 것이 바로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의 랜드마크인 고래뼈를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은 멕시코의 개념예술가로 알려져 있는 가브리엘 오로스코(Gabriel Orozco)의 ‘움직이는 매트릭스’라는 작품이다. 고래가 떠다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데 바하 칼리포르니아(Baja California)만에서 발견된 죽은 고래사체의 뼈를 이용하여 작품을 완성시켰다. 발견당시 고래의 무게는 30톤에 가까웠고, 13.5미터의 길이였다고 전해진다. 암컷 고래로 사망당시 나이는 30세며, 이윤복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이 고래는 둔기에 맞아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배나 다른 곳에 부딪혀서 사망한 것으로 추측한다고 전했다.

현재는 고래의 모든 살들을 제거하여 작품의 길이는 11.69m이고 1,169kg의 무게와  169개의 뼈로 구성돼 있다. 고래의 음파 파동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 해서 뼈에 그 움직임을 표현해냈다. 지상이 아닌 공중에 작품을 설치했고 움직이는 파동을 표현하여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의 이미지를 작품을 통해 살려냈다.  

도서관 1층 로비층에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도서관내에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을 연습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도서관 회원이라면 음악실을 방문하여 해당 악기 등을 연주할 수 있는데 개인 이어폰을 지참하여 이를 악기에 꽂고 연주하면 악기 소리는 밖에 들리지 않으나 연주자는 혼자서 악기의 소리를 들으면서 연주할 수 있다.

도서관에 있는 발코니에만 나가도 소음 때문에 상당히 시끄럽지만 도서관안은 그렇지 않다. 알베르토 칼라치가 이 도서관을 설계할 때 자연과 문화의 공생을 기조로 설계했다. 도서관 주위를 감싸고 있는 정원의 수목들이 소음 완충역할을 해주고 있어 도서관 내부에는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한국 도서들의 비치실태와 한인회의 기증행사

이제 이윤복 가이드와 서가를 돌면서 비치된 한국 도서들의 실태들을 살펴봤다. 이윤복 가이드가 이 자원봉사를 시작하기 전, 도서관 파악을 위해 서가 전체를 둘러봤으나 중국이나 일본책에 비해 한국과 관련된 책들은 너무 적어 울분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지리책의 경우 중국의 자치구인 티베트 관련책이 한국책보다 많았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컸다고 했다. 경주, 제주를 다룬 책은 있었으나 한국 전체를 다루거나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인 서울을 다룬 책은 찾을 수 없었다.

문학분야의 경우, 이윤복 가이드는 한국의 김춘수, 김종길 시인 등의 시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한국시집들이 있으나 시집들의 옆표지에 책제목과 저자를 아래에 표시하여 도서관에서 분류라벨을 붙일 경우 책 제목과 저자가 보이지 않아 한국책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복 가이드는 어학분야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다. 그녀는 현재 한국어 학습도서가 대출됐다가 반납되는 일들을 종종 확인한다고 전했다. 이는 멕시코에서도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역시 일본어 학습도서에 비해 한국어 학습도서는 그 비치가 상당히 열악했고, 더욱이 한국어 사전은 단 1권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직시한 이윤복 가이드는 멕시코 한인회에 기증행사를 제안했고 지난 1일 한인회는 106권을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에 기증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번에 기증된 책들 중에는 파친코, 검은 꽃, 82년생 김지영 등 최근에 발간되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책들과 최신 한국어 학습도서, 2003년쇄 엣센스 서한사전 등이다. 한인회에서 기증한 106권은 아직 도서 분류작업 중에 있으며, 곧 해당 서가 곳곳에 전시될 예정이다.

이윤복 가이드는 “60만권을 보유하는 대형 도서관에서 106권을 기증받았다고 해도 책을 분산해서 비치하기 때문에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한인회에서 기증행사를 계속할 예정이고 이것이 계속된다면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서관 가장 꼭대기 층에는 만화책도 있어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의 제일 꼭대기 7층은 도서관이 사용하는 DDC 분류법과는 다르게 15개의 컬렉션을 주제별로 만들었다. 해당 층의 복도 끝 창가 쪽에서는 문화강좌 등의 수업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특이할 만한 점은 7층에 만화책들도 비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멕시코 역사를 다룬 만화들도 있었고, 일본만화책이 다수 있었으며, 전부 스페인어로 번역됐다. 이윤복 가이드는 이 곳이 멕시코 현지인들에게는 가장 인기있는 장소 중에 하나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공연과 강좌, 케이팝 춤도 추는 살아있는 도서관 바스콘셀로스

로비층 끝에 가면 공연장으로 연결되는 길을 만날 수 있다. 바스콘셀로스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면 도서관에서 하는 각종 공연행사 내용 등을 볼 수 있는데, 연주회나 음악회 관람도 가능하며 무료이다.

도서관 바깥에 있는 정원에서 그린 하우스라는 건물이 보이는데 현재 일반인에게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그 건물은 1895년부터 1970년까지 화력발전소로 쓰였는데, 정원주위에 보이는 구축물들은 당시 화력발전소에서 쓰였던 시설물들이다.

도서관 정원에는 평일에 요가수업도 진행되고 있고 정원과 도서관 건물을 연결하는 각 출입구에 주말마다 케이팝 춤연습을 하는 멕시코 청소년들을 볼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강좌도 개설돼 있다고 한다.

모든 투어를 마치고 움직이는 고래에 다시 당도할 무렵 도서관안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한 가수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오는 7월 27일 가이드 자원봉사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떠나는 이윤복 가이드는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에 관심 많이 가져 주시고, 기증도 많이 해주신다면 이 도서관을 통해서 최소의 비용으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