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자의 역사이야기-⑥ 고려는 왜 멸망했을까?
개국 제2회 육룡이 나르샤
1374년 최영은 백전백승의 장수답게 제주도에서 일어난 목호의 난을 모두 진압하고 말머리를 돌려 바로 개경으로 향했다. 개경에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빠르게 상경하는 중이었다.
최영이 개경으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조선의 창업군주 이성계집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가 예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 있었다. 이성계는 전주 이씨라고 하는데, 왜 고향이 함흥이었으며, 드라마에서는 북한 말씨를 쓰는 모습으로 묘사됐을까. 이를 위해서는 조선 세종시절에 지어졌던 노래 용비어천가에서 육룡이 나르샤의 육룡 중 이성계와 이방원을 제외한 사룡(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용비어천가에서 목조라고 불리는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는 전주지역의 호족이었다. 이안사가 20세가 될 즈음 관기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관기는 관에서 관리하는 기생으로 당시 그 지역 수령의 여인이기도 했다. 수령의 여인과 정을 통했으니 당연히 수령은 진노했으나 당시의 호족이었던 전주 이씨 집안을 함부로 처단할 수 없어 수령은 중앙군을 불러 이안사를 처리하려 했다.
이에 이안사는 수령이 중앙군을 이용해 자신을 치려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의 식솔, 부하들을 거느리고 강원도 삼척으로 피신한다. 이 때 당시 이안사를 따르는 무리는 170여호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이안사에게 운이 안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당시 수령이 분이 풀리지 않았던 것인지 그 수령은 강원도 안찰사로 승진하여 이안사 앞에 나타난다. 이안사는 다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함경도 원산까지 피신하게 된다. 이안사가 전주에서 삼척, 삼척에서 원산까지 이동할 때 그를 따르는 무리는 당초 170여호에서 1,000여호에 이르렀다.
이런 많은 무리를 이끌고 함경도 지역에 도착한 이안사, 그러나 더 큰 세력과 맞닥뜨리되니 바로 몽골제국을 만난다. 당시 고려 조정은 몽골과의 전쟁을 위해 강화도로 피신한 상태였다. 원나라는 그에게 항복을 권유했고 이안사는 당시의 고려는 쇠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몽골에게 충성하고 그들로부터 인정받는다면 함경도를 본인의 뜻대로 다스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안사는 몽골에 항복하고 그들로부터 천호장의 지위와 더불어 다루가치라는 관직을 받게 된다. 원간섭기에 들어가면 천호장의 지위와 다루가치라는 관직은 원나라의 지방관을 의미하는 것이고 고려왕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이 관직은 세습 또한 가능했다.
고려는 점점 기울고 있었지만 이안사의 인생은 점점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사후 몽골이 그에게 내린 지위와 관직은 그의 아들 익조 이행리에게 이어진다. 이행리는 지금의 두만강 지역까지 세력을 뻗치려 했으나 두만강 지역의 다른 천호장들은 전부 여진족이었는데 고려인 이행리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지역에 있었던 여진족장들이 힘을 모아 이행리 세력을 공격하고 이행리는 이들을 피해 다시 함경도 원산으로 돌아온다.
함경도로 돌아온 이행리는 사망하고 그의 아들 이춘에게 다루가치직이 상속되니 그가 용비어천가의 도조이다. 도조 이춘은 함경도 지역의 세력을 공고히 했다고 전해진다. 이춘도 사망하고 그의 장남인 이자흥이 다루가치직을 받게 되지만 얼마되지 않아 사망하자 이자흥 동생이 다루가치직을 물려받게 되는데, 이가 환조라고 불리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다.
이자춘이 다루가치직을 계승할 때 당시의 철령 이북 흔히 쌍성총관부라고 불리는 지역에 이자춘의 이복동생 이나해가 있었다. 이자춘은 이나해 세력을 원나라 세력과 손잡고 모두 숙청한다. 그리고 쌍성총관부 지역까지 모두 본인의 세력하에 두게 된다.
이자춘 시대 정도 오면 원나라 세력은 점점 쇠퇴하게 되고 당시 고려는 공민왕이 다스리는 시기에 이른다. 원나라가 쇠락해 가는 상황에서 이자춘은 함경도 지역의 지배권을 보장받기 어려워졌다. 이에 공민왕은 그에게 다시 고려에 귀부할 것을 제안했고, 공민왕이 유인우 장군을 시켜 쌍성총관부를 탈환하려 할 때 이자춘은 유인우 장군에게 쌍성총관부 문을 열어줌으로써 고려는 쌍성총관부를 수복했으며, 이자춘은 고려신하로서 함경도 지역의 지배권을 다시 보장받게 됐다.
이자춘은 46세에 사망한다. 이제 그의 재산과 함경도 지배권은 그의 큰아들 20대의 이성계가 모두 물려받게 됐다. 이를 모두 물려받은 이성계 장군은 밖으로는 홍건적, 왜구들을 격퇴하고 안으로는 정변세력들을 제압하며 고려의 영웅으로 그 이름을 드높이게 된다.
우리가 이 시대를 다룬 드라마들을 보면, 본인들도 원나라에 붙어 호의호식하는 권문세족임에도 불구하고 이성계 집안세력을 부원배라 부르면서 조롱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행리부터 이자춘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지배권은 원나라가 직접 보장해줬으며, 이들은 몽골식 이름과 변발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조롱을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문세족! 그들이 소유한 땅은 산과 강을 경계할 정도로 막강한 부와 권력을 누렸다. 망해가는 고려에서 그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아니 그들의 세력은 더욱 막강해져가고 있었다.
이제 개경에 도착한 최영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