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자의 역사이야기
<제국의 조건>
알렉산더 대왕? 대제? 대영제국 군주는 황제인가?
중국의황제와 유럽의 황제
중국-천하통일하면 황제
우리는 현재 민주정 혹은 공화정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근대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동서양 대부분은 왕정국가 였다. 각 나라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지만 누군가 영웅이 나타나 영토를 넓히고 나라와 나라를 통합하면 그 나라를 우리는 제국이라고 부르고 제국의 군주는 ‘황제’라고 칭했다.
역사상 황제가 있었던 대표적인 국가를 살펴보면, 아시아에는 중국, 유럽에는 로마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중국에서 황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면, 중국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왕 영정이 왕보다 높은 지위의 뜻을 나타내는 칭호를 필요로 하여 ‘황제’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하였고, 그가 바로 우리가 진시황이라고 부르는 시황제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말하는 ‘천하’를 통일하면 왕위에 있는 존재, 즉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한나라 이후에는 분열된 중국에서도 황제칭호를 흔히들 사용했으며, 결국 황제국이라는 것은 중국 그 자체이거나 중국의 영향권에 벗어난 자주국임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어 1897년 우리나라도 자주국임을 선언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하고, 광무라는 독자연호를 사용하게 되면서 당시 국왕 고종은 제위에 오르게 되었다.
유럽의 황제가 되고 싶다면 교황청의 승인부터…
이제 유럽의 경우를 알아보자. 당시의 동서양을 통합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는 대왕인가? 대제인가? 19세기 제국주의 시절 그 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던 영국을 대영제국이라고 하는데 당시 영국의 군주는 황제인가.
유럽에서 황제임을 인정받는 것은 중국보단 조금 복잡한데, 일단은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어야 한다. 유럽에서는 로마가 망했어도 로마제국의 주인만이 황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에서는 황제를 칭할 때, caesar 즉, 카이사르, 시저 , 케사르라고 칭했다. 이는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에서 유래한 것이다. 독일의 경우는 황제를 ‘카이저’라고 칭했고, 러시아는 ‘차르’라는 칭호를 붙였는데, 전부 ‘카이사르’에서 유래한 단어들이다.
서유럽은 서로마가 멸망한 후, 당시 크리스트교의 종주국인 로마 교황청이 강력한 패권을 행사하며, 로마황제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중세 유럽 신성로마제국이 지금의 독일, 오스트리아 지방에 성립하게 되는데, 이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닌 나라에서 교황이 황제로 승인을 해주면, 곧 황제를 칭할 수 있었다. 즉, 서유럽에서는 황제를 칭하기 위해서는 교황청의 승인이 필요했다.
스페인에서는 카를루스 5세를 황제로 인정해주고 있는데, 그는 그의 아버지 펠리페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영지를 물려받았고, 그의 외할머니 이사벨 1세, 어머니 후아나로 부터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와 드넓은 영토를 물려받은 터라 교황청에서도 카를루스 5세를 황제로 승인해주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유럽 각국의 왕을 배출하면서 유럽의 패권을 거머쥐게 되었고 신성로마제국과의 지역적 인접성 등에 따라 교황청은 오스트리아 군주가 신성로마제국황제 겸직을 관례적으로 승인하게 되어 오스트리아도 황제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관례가 근대로 내려오면서 교황청에서 뜻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뜻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바로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교황청의 황제 승인여부를 떠나 본인 스스로 황제자리에 올랐다. 당시 로마 교황은 비오 7세, 일반적으로 황제 대관식은 교황이 황제로 임명되는 군주에게 월계관을 씌어주는 것이 관례인데, 대관식 그림에서도 보여지듯 교황을 뒤에 앉혀 놓고 본인이 월계관을 쓰고 그의 아내인 조세핀에게 황후관을 수여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후의 유럽은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의 주인은 스스로 황제를 칭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전쟁이후의 프로이센은 당시 300개로 쪼개져 있던 허울뿐인 신성로마제국의 독일지역을 통일, 독일제국을 선포하고 당시 빌헬름 1세는 교황청의 승인없이 황제자리에 올랐다. 동시대 프랑스 또한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나폴레옹 3세도 정권을 잡은 뒤 스스로 황제자리에 오르게 된다.
러시아는 종교적으로 본다면 러시아 정교회로서 서로마 카톨릭과 다른 종교로 분류되기 때문에 지금도 로마 교황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황제를 칭할 수 있었는가. 로마제국 말기에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고, 급기야 서기 476년 서로마는 멸망하면서 중세유럽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러나 동로마는 중세유럽시대를 거치면서 1,000년을 더 버텼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동로마 비잔틴제국은 그 생명을 다하게 된다. 비잔틴제국이 멸망할 때, 당시 황제였던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딸인 소피아 팔라이올로기나가 당시 제정 러시아의 전신이었던 모스크바 공국으로 망명했다. 당시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 벨리키는 당시 몽고제국의 킵차크 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면서 영토를 확장했고, 소피아 팔라이올로기나 결혼하여 제3의 로마를 칭했다. 이로써 그들의 군주는 황제를 뜻하는 ‘차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알렉산더 대왕의 경우는 예수 이전 사람이고 당시에 교황청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그를 공식적으로 황제라고 부르기에는 조금은 무리가 있다.
19세기 세계 3분의 1의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은 우리가 아무리 대영제국이라고 번역을 해서 부른다고 해도 헨리8세 이후에 로마 교황청과 결별한 이상 교황청에서 황제로 승인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고, 입헌군주제 국가가 된 상황에서 군주들이 굳이 황제를 칭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시간에 다른 주제를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